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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부석사 국보 종류; 부처님오신날 추천 사찰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추전해드리고 싶은 절중에 하나인 "부석사" 입니다.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에 위치한 사찰로 정말 많은 신도들이 연중 방문하는 곳입니다. 




 부석사에 가려면 문화재 관람료를 입구에서 내야 합니다. 어른 12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800원이며 신도증을 보이면 무료입니다. 차를 갖고 오시는 분들은 주차비도 따로 있습니다. 



 올라가는 길에 한컷 찍었습니다. 2월달에 찍은 사진아라 초록 잎사귀로 무성한 나무를 볼수는 없지만 나름 운치있고 좋습니다.



 부석사에는 총 4개의 국보가 있습니다. 무량수전은 국보 제 18호로입니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본당으로 극락정토의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있다.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할 당시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나 그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고려 현종 7년에 원융국사가 고쳐지었으며, 고려 공민왕 7년에 외적에 의해 불에 타, 고려 우왕2년에 원응국사가 다시 지었다. 조선 광해군 3년에는 폭풍우로 건물 일부가 파손되자 이를 복구하였으며, 이후 1916년에 해체. 수리 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규모는 앞면 5칸, 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기둥은 중간이 굵고 밑이나 위로 가면서 점차 가늘어지는 배흘림기둥이다. 지붕 처마를 바치기 위한 구조물인 공포를 기둥위에만 설치한 주심포 양식의 대표적 건물로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와 형식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다. 장식적인 요소가 적은 간결한 형태이나 건물 규모나 완성도 면에 있어서 장엄하고 깊이 있는 법당으로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무량수전의 정면 모습입니다. 추운날이라 털모자를 쓴 집사람이 찍혔습니다. 



 아주 오래된 현판에 무량수전이 한자로 쓰여 있습니다.



 그 다음은 무량수전 앞 석등으로 국보 제 17호 입니다. 이 석등은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팔각 석등이다. 맨 아래 네모난 바닥돌의 옆면에는 꽃모양의 안상을 새겼다. 그 위의 아래받침돌에는 큼직한 연꽃잎을 8개 조각하고 그 위에 각기 8개의 귀꽃 봉오리 장식을 하였다. 그 위에 놓인 팔각기둥의 받침돌은 굵기와 높이에서 매우 아름다운 비례를 보이고 있다. 윗받침돌에는 부드러운 연꽃잎 모양의 장식이 8개 새겨져 있다. 불을 밝히는 화창 사이의 네 명에 셔겨진 정교하고 세련된 보살사은 이 석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지붕돌은 모서리 끝이 가볍게 들려있어 경쾌한 느낌을 주면, 석등 정상에 있던 장식은 대부분 없어지고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그냥 보면 이게 국보냐 싶을 정도로 그냥 석등 처럼 보이지만 국보 제17호 맞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국보인지 모르고 그냥 지나칩니다. ㅋ



 다음은 소조여래좌상으로 국보 제45호 입니다. 이 불상은 진흙으로 만든 소조불상인데, 우리나라 소조불상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작품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불상 높이는 278cm이며,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는 불상의 뒤편에 나무로 따로 만들어 놓았는데, 가장자리에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으로 표현하였다. 일반 사찰과는 달리 법당 중앙의 정면이 아닌 서쪽에 마련된 불단위에 모셔져 있다. 손모양은 속가모니불이 흔히 취하는 항마촉지인으로, 무릎 위에 올린 오른손의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불상을 모신 법당이 서방 극락정토의 아미타불을 모신 무량수전이라는 사실과, 부석사 ' 원융국사비' 비문에 "좌우에 다른 보처 보살을 모시지 않고 아미타불 한 분만 모셨다"라는 기록이 있는 점으로 보아 이 불상은 아미타불임이 확실하다. 

 통일신라시대 불상 조형을 충실이 계승한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온몸에 금빛이 화려하며, 고려 시대 불상으로서는 상당히 정교한 수법을 보이는 걸작이다. 


※ 소조여래좌상은 법당안 촬영이 금지된 관계로 직접 가서 보시길 바랍니다. 



 왜 부석사 인가?를 알려주는 설명입니다. 신라 문무왕 1년 의상대사가 화엄학을 공부하기 위해 당나라에 갔을 때 의상대사를 연모한 선묘라는 여인이 있었다. 의상 대사는 중국 장안에 있는 종남산 지상사의 지업 삼장에게서 10년간 화엄의 도리를 배우고 깨달음을 얻은 후 귀국길에 올랐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선묘가 부두로 달려갔을 때 대사가 탄 배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선표는 바다에 몸을 던져 용으로 변신하여 의상 대사가 탄 배를 호위하여 무사히 귀국하게 하였다. 

 그 후 의상대사가 화엄의 도리를 널리 펴기 위하여 왕명으로 이곳 봉황산 기슭에 절을 지으려고 할 때, 이곳에 살고 있던 많은 이교도들이 방해하였다. 이때 선묘 신룡이 바위를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기적을 보여 이교도를 물리쳤다. 그리하여 이 돌을 '부석'이라 불렀으며 사찰 이름을 '부석사'라 불렀다고 한다. 그 후 신표 신룡은 부석사를 지키기 위해 석룡으로 변신하여 부량수전 뜰아래 묻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조선 영조 때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위아래 바위 사이에 약간의 특이 있어 줄을 넣어 당기면 걸림 없이 드나들어 떠있는 돌임을 알 수 있다." 라고 적고 있다. 





 떠있는 돌입니다. 가까이서보면 상당히 큰 돌인데, 실을 통과 할 수 있을까요?



 무량수전 측면에 배흘림기둥 입니다. 가운데가 불룩합니다.


 

나무아비타불!


인생을 즐기자(LIFE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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